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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이야기

비틀즈 존 레논, 오노요코, 사망원인

by emfpdlsaos 2023.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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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는 대중음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역대 최고의 록밴드이자 전 세계 록 음악의 상징과도 같은 레전드 그룹이다. 또한 비틀스 하면 빼놓을 수없는 인물이 존 레넌이다. 오늘은 존레넌의 가족과 그의 사망을 둘러싼 얘기를 알아보겠다.

비틀스

비틀스는 1957년 존 레넌이 조직한 고교 밴드 쿼리멘에서 시작하였고

존 레넌
존 레넌

폴 매카트니와

폴 매카트니
폴 매카트니

그의 친구 조지 해리슨이 가입하였으며,

조지 해리슨
조지 해리슨

1962년 링고 스타가 영입되면서 밴드가 완성되었다.

링고 스타
링고 스타

이후 비틀스는 1970년까지 1970년까지 13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하였다. 그러나 1968년경부터 멤버들 간의 음악적 갈등으로 밴드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19704월 폴 매카트니가 밴드를 탈퇴하면서 비틀스는 공식적으로 8년 만에 해체했다.

대표곡으로는 Yesterday, Let It Be, Hey Jude, All You Need Is Love, Ob-La-Di, Ob-La-Da, Twist and Shout, I Want to Hold Your Hand 등이 있다.

존 레넌과 오노 요코

존 레넌(본명 : 존 윈스턴 오노 레논 John Winston Ono Lennon)

존 레넌
존 레넌

  • 1940년 10월 9일 ~ 1980년 12월 8일 (향년 40세로 사망)
  • 배우자 : 신시아 레논 (1962 - 1968; 이혼), 오노 요코 (1969 - 1980)
  • 자녀 : 슬하 2남/줄리안 레논 (1963 - ), 션 레논 (1975 - )

오노 요코(본명 : 요코 오노 레논 Yoko Ono Lennon)

오노 요코
오노 요코

  • 1933년 2월 18일 ~
  • 배우자 : 이치야나기 토시(1956 결혼~1962 이혼), 앤서니 콕스(1963 결혼~1969 이혼), 존 레넌(1969(1969 결혼~1980 사별)
  • 자녀 : 딸 쿄코 챈 로즈매리 오노 콕스(1963년생), 아들 션 레논(1975년생)

일본의 설치미술가이자 행위예술가. 대중적으로는 존 레넌의 아내로 유명하며, 현대 예술에 많은 업적을 남긴 예술가이기도 하지만 후기 비틀스의 불화에 영향을 끼쳐서 비틀스의 팬들에게는 '일본에서 온 희대의 마녀'라고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존 레넌과 오노 요코에 얽힌 이야기

 존 레넌과의 만남 

오노 요코는 존 케이지의 작업 Notations에 참여하면서 존 레넌과 만났고 이후 둘의 만남은 불륜으로 번졌다. 존 레넌은 아이가 있는 유부남이었고 오노 요코 또한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있었지만 공식적으로는 이혼하지 않은 기혼자였다.

오노 요코와 비틀스와의 관계

오노 요코는 비틀스의 멤버 존 레넌의 두 번째 아내이다. 또한 둘이 결혼할 때 즈음 비틀스의 불화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비틀스 해체의 원인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녀가 비틀스의 일원이 되기를 바랐던 존 레넌과 다른 멤버 사이의 갈등이 비틀스 해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히 당시 비틀스에는 그녀 이외의 내외부적인 문제가 존재하고 있었다. 폴 매카트니도 인터뷰를 통해 그녀는 분명히 비틀스의 해체에 책임이 없다고 말했고, 마찬가지로 조지 해리슨과 링고 스타 역시 비슷한 어조의 인터뷰를 한 바 있다. 또한 폴 매카트니는 오노 요코가 존 레넌을 삶을 다른 방식으로 끌어들여 존이 성공적인 음악 커리어 2막을 시작하게 된 것 같다고 밝혔다.

비틀스 해체에 여러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이제 와서는 꽤나 복잡한 문제였다고 보인다.. 직접적으로 드러난 이유로는 상기한 오노 요코를 둘러싼 갈등을 비롯해 매니저인 브라이언 앱스타인의 사망과 그들이 세웠던 회사인 애플의 경영을 두고 벌인 불화, 음악적 견해 차이로 인한 멤버들의 솔로 커리어에 대한 의지 등을 꼽을 수 있다.

최근에는 서양 팬들을 중심으로 오노 요코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것이 당시 영국의 인종 차별과 성 차별적 요소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비틀스의 해체라는 큰 사건에 있어, 아시아인 여성으로서 필요 이상의 비난을 받았던 오노 요코가 일방적으로 타블로이드지의 유언비어를 위한 타깃이 되었다는 지적이다

​존 레넌의 사망 원인

1980년 12월 8일은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위대한 뮤지션 중 한 명인 비틀스 멤버 존 레넌이 사망한 날이다.

존 레넌의 사망 원인은 총상으로 인한 과다출혈이었다. 당시 존 레넌은 미국에 머물고 있었다. 1980128‘Double Fantasy’를 제작하고 활동을 다시 시작하려던 존은 녹음 스튜디오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뉴욕에 있는 자택 앞에서 마크 채프먼이라는 사람에게 사인을 해 줬고 그가 쏜 3838 구경 권총 4발에 왼쪽 가슴, 어깨 부분에 맞아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결국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향년 40세이다.

당시에는 마크 채프먼이 존을 죽인 이유는  존 레넌의 광팬이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정설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훗날 채프먼이 존을 살해한 동기는 개인적인 정신병력과 종교적 동기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것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는 Court TV의 인터뷰에 따르면 아버지가 애정을 한 번도 주지 않아서 트라우마에 시달렸는데, 레넌이 아버지처럼 보여서 죽였다”라고” 말한 적도 있고 또 Imagine 노래에서 무소유를 주장하는데 정작 존은 수백만 달러 짜리 아파트에서 호화 생활하는 것이 위선자라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존 살해 이유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겹친 것으로 보인다. 범인 마크 채프먼은 2급 살인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그는 지난 9월에 12번째 가석방 신청을 냈으나 기각됐다. 현재도 교도소에 갇혀 있지만 만약 출소할 경우 존의 팬들이 그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내보내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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