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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학 녹취록’이란?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 검찰 수사가 시작된 직후인 2021년 9월 26일과 10월 1일, 대장동 업자인 정영학 회계사는 스프링 노트로 제본한 녹취록 8권, 녹음기, 녹음파일이 담긴 USB 등을 검찰에 제출했다. 김만배, 유동규, 남욱 등과 나눈 대화와 통화가 녹음된 자료이다.

대장동 10년 개발 비사(秘史) 담은 스토리북... 2015년 기준으로 전·후반부로 구성
대장동 업자들이 개발 사업자로 선정된 건 2015년 3월이다. 녹취록은 녹음 시기에 따라,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43권)는 2년 4개월 동안 업자들이 위례 및 대장동 사업자로 선정되는 과정이 담겼다. 후반부는 1년 4개월 동안 업자들이 개발 이익을 나누면서 벌이는 암투가 주된 내용이다.
전반부에는 대장동 업자들이 검찰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고위 법조인들에게 청탁하고, 사업을 따내기 위해 유동규나 성남시의회 의원들에게 접근해 수억대 뇌물을 전달하는 과정이 드라마같이 펼쳐진다. 후반부에는 대장동 사건의 최대 쟁점인 천화동인 1호의 차명 지분 소유자와 6명의 실명이 나오는 ‘50억 클럽’, 이들에게 수백억 원에 이르는 돈을 어떻게 줄지 모의하는 과정이 자세히 담겼다.
대장동을 무대로 청탁, 협잡, 속임수 등 얽히고설켜 거짓과 진실이 한 편의 ‘범죄소설’처럼 전개된다.

‘천화동인1호 그분 것’ 등 언론이 대서특필한 김만배 발언... 1,325쪽 녹취록엔 없다.
‘정영학 녹취록’을 살펴보면, 그동안 ‘단독’을 달았던 언론 보도 일부가 ‘오보’였거나 근거가 '희박'했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게 2021년 10월 9일 자, <김만배 “천화동인 1호 배당금 절반은 그분 것”>이란 제목의 동아일보 단독 보도다. 김만배가 2019~2020년 '천화동인 1호가 내 것이 아닌 것을 잘 알지 않느냐'란 취지로 말한 사실이 정영학 녹취록에 담겨 있다고 썼다. 당시 거의 모든 언론이 김만배의 이 발언에 대한 검증 없이 ‘그분’을 추적했다. 하지만 이번에 뉴스타파가 공개하는 1,325쪽 정영학 녹취록에는 이 같은 김만배의 발언은 없다.
또한 최근 상당수 언론은 ‘김만배가 2025년에 유동규네(이재명 측에) 지분을 넘기겠다’고 말한 것을 들었다는 남욱의 진술을 검찰이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일부 매체는 이런 김만배의 발언이 정영학 녹취록에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뉴스타파가 녹취록을 분석한 결과, 이 또한 사실이 아니었다.
‘2025년에 지분을 넘기겠다’는 취지의 김만배 발언이 있긴 하다. 2020년 11월 6일 자 녹취록이다. 경기도 용인의 한 골프장에서 김만배가 정영학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내가 그래서 너(유동규)는 남욱이랑 헤어질 수 없어. 너 술 좋아하고, 남욱이랑 그렇게 이거 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넌 나중에 남욱이랑 가. 응? 그리고 2025년 정도 되면 10년 되니까. 니가 달래면 투자 형식으로 하든 뭐 형식으로 하든 줄게”
< 2020년 11월 6일 자 녹취록 중 김만배의 발언 > |
위 김만배 발언에서 ‘니가’는 표준어로 ‘네가’이고, 발언의 맥락상 유동규 한 명을 뜻한다. 하지만 유동규 뒤에 접사 ‘네’를 붙여 ‘유동규네’가 되면, 복수의 사람이 된다. 정영학 녹취록 전체를 살펴봐도 그렇다. 녹취록을 보면, 김만배는 유동규에게 돈을 건넬 방법을 고민했고 네 가지 방안이 언급된다. 이 과정에서 ‘유동규네’ 같은 발언은 찾아볼 수 없다.

한국일보가 지난해 2월 19일에 단독 보도한 <대장동 ‘그분’은 현직 대법관이었다>도 마찬가지다. 당시 한국일보는 2021년 2월 4일 자 녹취록을 근거로 ‘그분’이 현직 대법관이라고 폭로했다. 하지만 녹취록에 앞뒤 문장을 보면 여기서 ‘그분’은 특정한 개인이 아닌 단순히 사람을 지칭하는 인칭 대명사다. 또 녹취록 전체를 살펴봐도, 현직 대법관이 천화동인 1호의 숨겨진 주인이란 근거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녹취록과 별개로 언론사가 독자적인 취재를 통해 기사를 뒷받침하는 물증을 찾았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물증은 기사에 제시되지 않았다.

시기 별로 관통하는 맥락을 살펴야 대장동 비리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
녹취록 속 업자들의 대화는 시기 별로 변화하고 특히 업자들의 입지와 상황에 따라 변주된다.
2012~2013년에는 주로 수사를 피하려고 법조인들에게 청탁하고, 사업을 따내기 위해 로비를 모의하는 장면이 여럿 나온다. 반면 수익이 나오기 시작한 2019년 이후에는 이권을 얻는 데 들어간 로비 비용을 어떻게 나눠 부담할지를 두고 다툼이 일어난다.
단순히 한두 문장만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대화가 이어지는 유기적인 맥락을 따라갈 때 정영학 녹취록에 담긴 행간의 의미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다. 이를 통해 부동산 토건족들이 천문학적 개발 이익을 챙길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인지, 그 과정에 지방 권력과 언론·법조 엘리트들은 어떻게 조력자로 나섰는지 등 ‘부패의 카르텔’을 추적할 수 있다.
극심한 정보의 불균형으로 검찰이 흘리는 대로 ‘받아쓰기’할 수밖에 없는 기성 언론의 관행을 거부하고, 정권 교체 후 대거 바뀐 수사팀이 사실상 다시 시작한 대장동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검증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정영학 녹취록’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영학 녹취록’은 검증 없는 대장동 보도를 바로잡는 ‘팩트체커’이며, 대장동 사건의 본질을 꿰뚫는 ‘공적 기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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